멜서스의 인구론.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자연대로라면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은 피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빈곤과 죄악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쉽게 말해 등차와 등비관계인데,
우리가 사는 오늘날에는 이와는 역설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소녀와 독수리-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현재의 세계인구가 약 68억 정도 되는데, 1984년에 이미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120억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량이 제대로 공급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남을 것이다.
기아가 지구의 인구밀도를 조절하는 힘이 있다는 멜서스의 말은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한 방법론적인 입장에서는 통용될 수 있다.
하지만, 기아는 모두 부채로 인한 영향을 받는다. 어떠한 면에서 기아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렇게 본다면, 기아로 죽은 이들은 살해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강물을 마시는 소년-나이지리아> <강물을 뜨는 여인-나이지리아>
이미 아프리카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을 쉽게 접하고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에 직접 가본적은 없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대중매체나 소식을 통해
듣는 그 곳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4~5살 된 아이들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굶어 죽고, 기본적인 식수 조차 없어서 동물들이 먹던 강물을 같이 마신다.
이는 또 다른 질병의 확산을 가져오고 전염은 코앞의 칼날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물리적인 거리로 느끼는 아프리카는 결코 먼 거리가 아니다. 시대와 상황의 매개변수가
변하면서 비행기로 하루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문제는 “심미적 거리감”에 있다.
직접 마주치지 못하고 그들의 상황을 다른 세상으로 여기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나에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곳이 아프리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근으로 죽어가고 실질적인 교육이 실행되지 못하는 곳.

< 해맑게 노는 아프리카 아이들>
어느 세상에나 아이들은 해맑고 아름답다. 투정도 부리고 밝게 뛰어놀 아이들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나도 처음에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 하지만 어렵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의 인생보다 삶 자체가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 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담배연기처럼 퍼져나가는 인터넷 세상 속에서
한 달 3만원으로 유니세프에 기부하면서 몸소 느끼는 점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왔던 것들.
그리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가치를 나는 오늘 기부하고 있다.
하루하루 세상에 감사하면서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고 싶어서.
^^